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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0-0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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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실이 동쪽의 낙양에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나 주왕조는 이전 서주시대의 influence(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오히려 실력을 가진 제후가 패권(패권)을 다투는 시대가 된다 따라서 실제로 동주시대의 종말은 주왕조의 멸망시기가 아니라 진이 천하를 통일하는 B.C.221년으로 보고 있따
또한 이 시대는 춘주·전국 시대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아들 리에게 사람은 시를 배우지 않으면 할 말이 없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나설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시와 예를 중요시했다. 이에 비하여 전 국시대에는 주왕이 완전히 권위를 잃고 이전의 예적 질서도 시행되지 않아 제후국이 서로 쟁탈을 반복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따
공자는 학문과 수양에 남다른 열성을 지닌 이였다. 그는 시를 통해서…(생략(省略))
설명
순서



다.
이렇게 춘추·전국시대의 두 시기를 구분해 보면 춘추시대에는 아직 명목적으로 주왕의 권 위가 온전하여 서주 이래의 예적(예적)인 제도가 다소나마 시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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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왕이 죽은 뒤 태자 의구는 동쪽의 성주로 도망가 B.C.770년 즉위하여 평왕(평왕)이 된다 이후 주왕조는 성주에서 존속하다가 B.C.256년에 진에게 멸망한다. 그것은 이 시대 전반기 대부분의 歷史(역사)가 『춘추(춘추)』라는 연대기에 , 후반기에 활약했던 외교가들의 언론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전국책(전국책)』이라는 서적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일것이다
춘추(춘추)』는 원래 노나라의 연대기였던 것을 공자가 편집하여 개정한 것이라 하는데 그 내용은 B.C.722년 노나라 은공(은공) 원년으로부터 B.C.479년 애공(애공) 16년까지의 사 건을 기록하고 있따
춘추와 전국의 분기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한·위·조의 3가가 진을 삼분하여 사실상 독립했던 B.C.453년을 그 분기점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 이 있따 따라서 『춘추(춘추)』이후에 30년 정도를, 또한 그 이전의 50년 정도를 더하여 춘 추시대(B.C.770∼B.C.453)라 하고 B.C.452년 이후를 전국시대로 규명한다. 이 기간을 동주시대라고 부른다.